AI 셋에게 브랜드 로고를 맡겼다 — Gemini는 그림, Codex는 벡터, Claude는 배포
이 사이트에 로고와 마스코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AI에게 맡겼다. 정확히는, AI 하나에게 다 맡기려다 실패하고, 결국 셋에게 나눠 맡겼다. Gemini가 그림을 그리고, Codex가 벡터를 깎고, Claude가 사이트에 붙였다. 그 과정에서 AI마다 잘하는 층위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1. Gemini — "느낌"은 만드는데, "정밀 제어"는 못 한다
시작은 마스코트였다. Gemini에게 "검정 유광 단일 재질처럼, 더 멋진 로봇으로, 배경 없이"라고 시켰더니 꽤 근사한 로봇을 뽑아줬다. 앞·옆·뒤 3면도까지 만들고, 가슴엔 우리 플라스크 심볼과 "ainotelab" 글자가 새겨져 나왔다. 이미지 생성은 확실히 잘한다.
그런데 정밀한 통제가 필요한 순간마다 벽에 부딪혔다.
비율을 못 바꿨다. 원한 건 플랫 카툰풍의 귀여운 치비 — 머리 크고 몸통 통통, 다리 짧은 인형 스타일이었다. "머리 큰 인형 비율로, 손 짧고 다리 짧게"라고 했더니 머리는 키웠지만 팔다리는 그대로였다. Gemini는 정직하게 인정했다.
"요청하신 대로 다리와 손을 짧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팔다리가 원래 길이를 유지해, SD 비율이 아니라 흔들이 인형 느낌이 됐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아예 고장 났다. 이미지를 계속 생성하다 무언가 꼬이면, Gemini는 로봇 대신 난데없이 "암석의 종류"와 "광합성" 같은 교과서 도표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러곤 더는 이미지를 못 만들었다. 스스로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는 이미지 도구가 오염된 것처럼 동작해서 결과를 못 낼 상태입니다."
해결책은 허무했다. 새 세션을 열고 원본을 다시 주면 멀쩡히 다시 그렸다. 세션 하나가 어떤 상태에 빠지면 그 안에서는 회복이 안 되고, 통째로 새로 시작해야 했다.
벡터로도 못 바꿨다. 로봇 가슴의 그 심볼을 떼어내 로고로 쓰고 싶었다. 그러려면 픽셀이 아니라 벡터(SVG)여야 한다 — 확대해도 안 깨지고 웹 헤더에 선명하게 들어가려면. "흰 배경 빼고 벡터로 만들어줘"라고 하자 Gemini는 또 솔직했다.
"현재 텍스트 기반 AI 모델의 한계로, 흰색 배경을 제거하고 완벽한 벡터 파일로 직접 변환해 드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신 방법만 안내했다(일러스트 이미지 추적, Inkscape, Vectorizer.ai). 그러면서 자동 추적을 쓰면 그라데이션이 단색 띠로 쪼개지고 글자 모서리가 뭉개지니 결국 벡터 안에서 다시 그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첫 발견이 나온다. 이미지 생성 AI는 "이런 느낌"은 훌륭하게 만들지만, "이 각도로 3px만, 이 비율로, 이걸 벡터로" 같은 정밀 제어는 약하다. 그림을 만드는 능력과 도형을 정밀하게 통제하는 능력은 다른 영역이다.
2. Codex — 벡터를 손으로 깎다 (68번의 대화)
그래서 벡터는 코드로 접근했다. OpenAI Codex에게 원본 이미지를 주고 "글자는 빼고 SVG로 만들어봐"로 시작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였다. 로고 하나를 완성하는 데 68번을 주고받았다. (심지어 대화가 길어져 중간에 맥락이 압축되며 오갔던 기록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기도 했다.)
지시는 점점 정밀해졌다. 몇 개만 옮겨 적으면 이렇다.
- "가로선과 중앙 세로선은 떨어져야 하고, 가로선 오른쪽은 오른쪽에 붙어야 함"
- "세로선이 가로선과 만나는 부분을 둥글게 말고 사선으로 잘린 듯 직선 처리"
- "검정선 20% 두껍게, 모든 선은 거리를 유지, 크기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안쪽 방향으로 두꺼워져야 함"
- "색상 도형은 검정선 안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곡선에 맞춰 채워져야 함"
이건 대화가 아니라 원격으로 디자이너의 손을 조종하는 일에 가까웠다. 좌표 하나, 각도 하나를 말로 옮겨야 했다.
그리고 마찰이 있었다
AI는 시키지 않은 걸 건드렸다.
"너 왜 자꾸 말하지 않는 부분을 수정하는 거지?"
더 답답했던 건 미리보기였다. 고쳐달라고 했는데 화면엔 옛날 그림이 떴다. AI가 망친 줄 알고 몇 번을 다시 시켰는데, 알고 보니 최초에 그린 그림을 계속 미리보기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물이 아니라 소통이 고장 나 있었다.
"처음 그린 그림을 미리보기라고 클릭하게 하니까, 네가 작업을 잘못한 줄 알았어."
그 와중에 규율이 생겼다
이 혼란 속에서 스스로 작업 규칙을 세웠다.
"이 파일 다른 이름으로 보관. 저장본은 훼손되면 안 됨. 이후엔 지시가 있을 때만 final로 저장하고, 그 외에는 v012처럼 버전을 만들어 저장."
AI가 자꾸 되돌릴 수 없게 망치니, 버전 관리와 원본 보호 원칙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개발자가 코드에 Git을 쓰는 것과 같은 이유다. 창작을 AI와 하려면, "망쳐도 되돌아갈 지점"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수십 개의 버전을 거쳐 로고가 완성됐다. Codex는 이미지 생성 AI가 "못 한다"고 한 벡터 정밀 작업을, 지시만 정확하면 끝까지 해냈다.
3. Claude — 완성물을 진짜 사이트에 붙이다
로고 파일이 생겼다고 끝이 아니다. 실제 웹사이트에 반영하는 건 또 다른 층위였고, 여기서 세 번째 AI가 붙었다. 실무 함정 두 개가 특히 값졌다.
파비콘의 16px 벽. 로고 심볼을 탭 아이콘으로 만들었더니 32px에선 괜찮은데 16px에선 뭉개졌다. 얇은 선과 위쪽 분자 디테일이 극소 크기엔 정보가 너무 많았다. 예쁜 로고가 좋은 파비콘인 것은 아니다.
OG 이미지가 SVG면 미리보기가 안 뜬다. 소셜 공유용 OG 이미지를 SVG로 뒀는데, 페이스북·카카오톡·슬랙은 SVG OG를 렌더링하지 않는다. 링크를 공유해도 미리보기 카드에 그림이 안 나왔다. 1200×630 PNG로 바꾸고서야 정상 표시됐다. 벡터가 항상 정답은 아니다 — 쓰이는 자리마다 맞는 포맷이 다르다.
4. 색은 결국 취향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색이었다. 로즈골드로 갔다가 빨강을 시도했다. 순수 빨강은 너무 강해서 "강렬함을 조금 낮춰달라"고 했고, 그렇게 soft-red가 나왔다. 데이터로 우열을 가릴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내가 그 색이 좋았다. 지금 이 사이트 헤더의 로고가 그 색이다.
배운 것
- AI 하나에 다 맡기지 말 것. 그림 생성, 벡터 정밀 작업, 웹 반영은 서로 다른 능력이다. 잘하는 AI에게 잘하는 일을 시켜야 한다.
- 생성은 "느낌", 코드는 "제어". 비율을 정확히 줄이거나 벡터로 만드는 건 생성 AI에게 어렵다. 정밀함이 필요하면 코드로 접근하는 편이 낫다.
- 정밀 작업일수록 지시가 전부다. Codex는 좌표·각도·간격을 말해준 만큼만 정확했다. 모호하게 말하면 모호하게 나온다.
- 생성 AI의 일관성엔 한계가 있다. 같은 마스코트를 재생성해도 얼굴은 매번 조금씩 다르다. 로고 같은 "고정 요소"가 있어야 같은 캐릭터로 읽힌다.
- 창작을 AI와 하려면 "되돌아갈 지점"부터 만들어라. 버전 보관·원본 보호가 없으면 한 번 잘못 건드릴 때 전부 잃는다.
- 완성물과 실사용은 다른 문제다. 파비콘 16px, OG 포맷처럼, 만드는 것과 쓰이게 하는 것 사이엔 또 한 겹의 벽이 있다.
- 취향은 데이터로 못 정한다. 마지막 색은 결국 내가 좋아서 골랐다. AI가 대신 정해줄 수 없는 영역이 있다.